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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선사 시대 인류의 시초를 알아보자.

by 세계 역사 전문가 2024. 2. 2.

선사 시대 / Prehistory

선사 시대란 문자 그대로 인류의 역사가 적혀있지 않은 시대를 뜻하며, 인간 생활에 대한 문자 기록이 없던 시대를 일컫습니다. 이 시대는 문헌 등이 전무하고 오직 유적, 유물 등을 거쳐서만 해당 역사를 유추해야 하는 어려움이 도사린다. 근래에는 선사 시대라는 용어 대신 '문자 사용 이전 시대' 내지 '문해 이전 시대'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선사 시대의 시작 기준은 애매하며, 인간이 유인원 사이에서 따로 분류되기 시작한 때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300만 년부터 기원전 260만 년경까지의 시기로도 볼 수 있었지만, 2002년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가 발견되면서 인류와 유인원의 공통 조상의 연대가 더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기원전 700만 년경의 화석을 의미합니다.

선사 시대의 종료 시점은 문자의 발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문자 사용이 시작된 시기가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선사 시대의 종료 시점도 각지에 따라 다릅니다. 최초의 문자 등장은 기원전 5300년경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초기의 문자는 주로 상징적이고 주술적인 용도로 사용되어 인간 생활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최초의 실질적인 문자 기록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쐐기문자 계열의 기록이 나타난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늦은 케이스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1788년 유럽인과의 접촉 이전까지 문자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문자는 없었지만 언어는 호모 사피엔스 이후로 항상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선사 시대에서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던 신화나 전설 등이 몇 가지 존재합니다. 오세아니아와 같이 최근까지 문자가 없었던 지역은 불완전하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구전 설화들을 최대한 수집하여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선사 시대의 다양한 구분

일반적으로 도구를 기준으로 삼아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로 나누는 전통적인 역사 구분이 있지만, 세계적인 선사 시대의 연구를 통해 이 구분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구리와 청동 사용이 시작된 시간 간격이 천 년 이상이나 되기도 하며, 이로 인해 영국 학자들은 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전환되는 시기를 '구리 시대'로 명명하여 제안했지만, 아직까지 석기-청동기-철기 3시대 구분법과는 별개의 독립된 시대로 널리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법에서 주된 도구에 따라 혼동이 생기기도 합니다. 특히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의 희귀성으로 인해 대다수의 도구가 여전히 돌로 만들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피라미드를 세우고 문화를 발전시켰던 이집트인들은 석기만을 사용했고, 아메리카의 원주민들도 대부분 석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는 초기부터 구리를 사용하였으며, 잉카 제국과 마야 문명은 구리 제련술을 개발한 시기에 해당합니다.

석기 시대는 일반적으로 구/중/신석기 시대로 나뉩니다. 구석기 시대는 돌을 깨서 만든 뗀석기(타제석기)를 사용하며, 중석기 시대는 해빙기로 인해 동물 크기가 줄어들면서 비교적 작은 잔석기(세석기)를 사용했습니다. 신석기 시대는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마제석기)를 특징으로 합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최초의 금속 도구가 사용되었지만 생산량이 부족하여 주로 제기와 군사용으로만 활용되었습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철기 시대가 오면서 군사력과 경제력이 발전하며 대부분의 지역에서 역사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문자의 등장 시기에 따라서도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를 구분하는데, 문자가 일찍 등장한 문화권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역사 시대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메리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는 야금술의 등장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구분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따라서 선사 시대는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 종이 등장한 시점부터를 가리키며, 지질 시대와는 별개로 다뤄져야 합니다. 그러나 영어에서 "Prehistoric age"로 표현할 때 문맥에 따라 선사 시대의 일부로 간주될 수도 있습니다.

선사 시대의 다양한 민족과 생활 양식

유목민계는 넓은 초원을 돌아다니며 방목과 같은 생활 양식을 발전시킨 민족들을 지칭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목민 계열 민족으로는 베드윈, 튀르크, 유대, 몽골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유목 생활을 통해 다양한 기술과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정착민계는 조와 피를 비롯한 농작물을 재배하고, 기장과 보리를 제배하는 민족으로, 인류의 4대 문명 발상지 중 일부를 창조한 중요한 집단입니다. 초기에는 농경에 종사하여 처음으로 잉여 식량을 생산하고 비축했지만, 다양한 영양분 섭취 측면에서는 수렵채집민계에 비해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수렵채집민계는 주로 사냥과 과일, 곤충, 초본류 등을 채집하여 살아가는 민족으로, 인류가 등장했을 때부터 원래의 생활 방식이었습니다. 식량 공급이 불안정하지만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해 평균 키가 더 크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부양할 수 있는 인구수가 적었던 특징이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민족과 생활 양식은 선사 시대의 다양성을 형성하며, 각 민족은 지역적인 환경과 자원에 따라 독특한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선사 시대의 이러한 다양성은 현대 문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개념

구석기 시대는 260만 년부터 300만 년 전까지의 긴 시기를 나타내며, 이는 전체 선사 시대 중 약 98.8%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는 지질학적인 기준으로 플라이오세 말기와 플라이스토세의 일부에 해당합니다.

구석기 시대는 도구의 사용으로 특징 지어지는데, 이는 약 300~400만 년 전에 태어난 인류가 돌을 깨서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이 도구 사용은 동물과의 차이를 나타내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최초로 구석기를 사용했다고 인류학적으로 분류됩니다. 돌을 깨서 석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개념은 카푸친 원숭이와 인류만이 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푸친 원숭이는 최소 700년 전부터 석기를 활용한 도구 사용이 확인된 동물로, 이를 통해 앞으로의 인간 발전을 예측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석기의 등장과 구석기 시대

2015년에 발견된 케냐 로메퀴에서의 330만 년 전 석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석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석기는 호모종이 만든 것이 아니라 추측되고 있습니다.

구석기 시대에서 사용된 석기는 주로 뗀석기, 타제석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전문가가 아니면 돌과 석기를 구분하기 어려운데, 전문가는 타격법과 가압법을 구분하여 가공 여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석기의 형태는 긁개 등 다양한 유형으로 분류되기도 했습니다.

구석기 시대는 좌우 대칭의 개념이 도구에 적극적으로 적용된 시대로, 이 개념은 신석기 시대의 간석기, 청동기 시대의 동검, 철기 시대의 철검으로 이어지며 현대의 도구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석기 시대에서는 석기뿐만 아니라 뼈, 뿔, 상아 등 단단한 물질도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해안가에서는 조개 껍데기를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흑요석은 주요한 무기 자원으로 거래되었습니다. 흑요석의 특징은 산출지를 특정하기 쉬워 멀리 떨어진 지역 간 교류가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석기는 주로 사냥이나 전쟁을 위한 무기, 식량을 가공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석기의 내구도가 낮아 몇 번만 사용하고 버리는 소모품에 가까웠기 때문에 완제품 석기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몸돌, 즉 돌의 조각을 떼어내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2014년에는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눈금이 새겨진 석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석기는 손으로 들고 다른 돌의 길이를 잴 수 있는 크기로 망치 등을 제작할 때 쓰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구석기인들이 숫자 개념을 넘어 각종 사물을 측정하는 용도로 석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2020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생 인류가 발생하기 이전인 구석기 시대에는 뗀석기를 만들 때 불을 이용하여 가공하기 쉽게 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선사 시대의 종족과 생활양식

선사 시대의 종족은 크게 유목민계, 정착민계, 수렵채집민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착민계는 조와 피, 기장, 보리, 그리고 이후 밀과 쌀을 제배하는 민족입니다. 이들은 농경을 통해 처음으로 잉여 식량을 생산하고 저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수렵채집에서 얻는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여 오히려 평균적인 영양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유목민계는 좋은 초원을 돌아다니며 방목 등을 통해 발달한 민족입니다. 베두인, 튀르크인, 유대인, 몽골인 등이 대표적인 유목민 계열 민족으로 존재합니다. 이들은 주로 유목 생활을 하며 기르는 가축을 중심으로 경제적 활동을 펼쳤습니다.

수렵채집민계는 짐승을 사냥하고 과일, 곤충, 초본류를 채집하여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인류가 등장한 초기부터 원래의 생활 방식이었으며, 영양분 섭취 측면에서는 평균 키가 농경민보다 크지만 부양할 인구 수가 적은 특징이 있었습니다. 주로 수렵과 채집을 통해 살아가며 민간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선사 시대는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나뉘며, 각 시대마다 생활양식과 문화가 크게 변화했습니다. 선사 시대의 종족들은 자연 환경에 적응하며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선사 시대의 종교는 주로 자연과의 조화, 신앙심을 중시하는 양성론적인 성격을 가졌습니다. 또한 선사 시대의 미술은 도구나 기생동물 등을 장식하는 형태로 나타났으며, 그림이나 도안이 새겨진 도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선사 시대의 다양한 종족들은 각자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형성하며 발전했습니다. 농경과 유목생활, 수렵과 채집의 다양한 생활양식은 선사 시대를 특징 짓는 중요한 요소였으며, 이들은 자연 환경에 적응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수렵과 채집의 시대

선사 시대는 주로 수렵과 채집을 통해 식량을 얻었습니다. 이 시대의 인류는 자연에서 직접 사냥하고 채집하여 생존했습니다. "Man the hunter(사냥하는 남자)"라는 개념이 도민해 있었으나, 실제로는 수렵과 채집이 함께 이뤄지며 두 가지 방식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수렵과 채집은 서로 다른 영양소를 제공하며, 종종 둘 다 필요한 활동이었습니다. 주로 채집은 동물성 영양소와 채집된 식물성 영양소의 비중이 6:4에서 4:6 정도로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수렵과 채집이 거의 비슷한 중요성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채집은 주로 동물성 영양소를 얻는 수렵에 비해 안정적인 칼로리와 영양소 공급원으로 작용했습니다. 특히 채집식량은 수렵식량에 비해 높은 안정성을 가진 칼로리와 영양소를 제공했기 때문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채집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졌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벌레 채집이었는데, 곤충은 풍부하게 존재하며 잡기 쉬워서 단백질 공급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또한 죽은 동물의 사체나 맹수가 사냥한 먹잇감을 가져와 먹는 스케빈징도 일반적이었습니다.

수렵과 채집 이외의 활동으로는 장신구 제작이나 벽화 등의 예술적 활동도 이루어졌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인류는 여가 시간에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형성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수산물도 채집의 일환으로 중요한 식량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물고기, 조개류, 갑각류 등 다양한 수산물은 안정적인 식량을 제공하며, 어로 활동은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수산물을 획득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렵과 채집은 선사 시대의 주요 식량 획득 방법으로 협력하여 인류의 생존을 지원했습니다. 두 가지 방법은 서로 보완적이었고, 안정적인 영양원을 제공하여 선사 시대의 인류가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인류의 대확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기반으로 한 인류의 조상과 아종들은 구석기 시대에 지구 전체로 퍼져 다양한 종으로 분화했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그리고 다양한 아종들이 석기와 원거리 투사무기 사용으로 채집과 수렵을 조합해 활동하며 전세계로 확산했다.

이러한 대확산은 현생 인류의 조상들이 다른 종들과 차별화된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생 인류는 장거리 이동이 가능한 신체 구조를 보유하며, 이는 자원 소진 시 근거지 이동이라는 전략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다양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이끌었다.

인류의 특이한 생물학적 특성은 대확산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현대인은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열대동물'로서, 모든 인종이 체열을 방출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피부색이나 모발의 사소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근본적으로 거의 변하지 않은 생물학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

대확산은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단일종으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 서식하는 육상동물로 등극하게 한 엄청난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근연종들은 멸종의 위험에 직면했고, 유전적 다양성이 현대 인류에서 심각한 병목 현상을 일으켰다. 그러나 우리 종은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데에 성공하여 현재 80억을 넘는 인구로 전 세계에 걸쳐 번영하고 있다.

구석기 시대의 인류는 동굴에서 살던 초기 단계에서 막집을 건설하며 생활의 형태를 다양화했다. 해양도 정복하여 어보리진이 호주에 정착하는 등, 다양한 환경에서의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농경이 시작되면서는 더 많은 인구를 지원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생활 방식과 사회 조직이 변화하게 되었다.

인류가 아프리카를 빠져나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함에 따라 네안데르탈인 등 다른 종들과의 혼혈이 발생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과의 기술적 경쟁에서도 현생 인류의 기술은 뒤떨어지지 않았으며, 혼혈이 발생한 증거도 나타났다. 또한 개는 구석기 시대에 인간이 최초로 가축화한 동물로 등장하였다.

이렇게 인류의 대확산은 현생 인류의 특이한 물리적 특성, 생물학적 유지력, 혼혈 등의 다양한 요인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현상으로, 그 결과 현대 세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활양식과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